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장 14-17절)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고 심판하셔서 사람이 뱀의 계획에 동참할 수 없도록 원수되게 하시고 사람의 회복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의 반역에 참여한 사람도 심판을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뱀과 같이 회복 불가능한 처벌이 아닌 고통과 수고를 통해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심각성을 알게 하시며 그를 통해 돌아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자에게는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셨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았어도 여자는 임신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주신 복의 토대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로 말미암아 고통이 크게 더하여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고통'입니다. 고통은 '각성시키다'에서 파생된 말로 고통은 단지 벌로서의 목적을 넘어, 고통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계속 알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여자는 임신과 해산의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중대한 것인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인간에게 반역을 당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볼 수 있게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통해 여자는 뱀처럼 회복 불가능한 상태의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여자에 대한 심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가지가 더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자를 지은 목적에 대한 것으로 기술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돕는 베필로 지으셨습니다. 강력한 도움을 통해 지배할 수 있도록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처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으로 함께 하도록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반역의 범죄로 이러한 돕는 베필에서 왜곡된 방향으로 의도가 바뀌어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도 온전한 모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너는 남편을 '원한다'는 의미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아가서 7:10절을 제외하면 창 4:7에서 한 번 더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죄가 너를 원하나'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죄가 굶주린 가운데 가인을 열망하는 모습을 이미지화한 것입니다. 죄는 가인을 덮쳐 가인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고 한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원한다는 것은 단지 사랑의 열망이 큰 것을 넘어 돕는 베필에서 지배권을 가지고 남자를 다스리기 원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고 남자가 여자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창세기 1장에서 '다스리다'와 다른 원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주도권과 지배권에 주로 쓰이는 단어를 사용하여 여자가 남자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지배를 받는 상테에 놓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범죄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합니까?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더 나은 선, 더 나은 지혜를 통해 더 행복하고 더 풍성하고 더 아름다운 가정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반역의 결과로 돕는 베필로 한몸된 가정에서 서로 지배권을 가지고 다투는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이룬 가정은 사랑하며 섬기는 돕는 베필을 기대하며 시작하지만 서로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아름답게 만드신 가정이 어둠과 혼란으로 퇴행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가정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의 서로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쪽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는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서로 도우며 섬기며 사랑하는 가정은 인간의 반역으로 처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하게 될 때 가능합니다. 가정에 드리운 죄와 사망의 통치를 거둬냈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돌아섰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서로를 향한 지배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상태요 하나님의 보살핌과 사랑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가정을 다스리실 때 그 가정은 지배욕이 아닌 돕는 베필로서 서로를 보살피고 가꾸며 사랑으로 충만한 가정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수고를 더하셨습니다. 수고 하여야 수고한 만큼 그 소산을 먹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수고가 심각한 것은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역 때문에 땅까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9절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가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반역은 자신들만 심판받고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하며 고통 받게 했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남자가 그대로 돌려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땅이 풍요로운 소산물로 사람을 기쁘게 하였었는데, 사람의 반역으로 그가 땀을 흘려야 간신히 먹을 소산물만을 허락합니다. 땅이 적대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기술을 개발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출을 늘리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땅을 파괴하고 황폐화하는 방법들이 대다수 입니다. 땅을 짜내서 만들어 내기에 결국은 파멸로 달려가게 됩니다. 사람의 반역은 가정을 포함하여,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부패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피조물들에 대한 관계도 변질시켜 피조물들이 사람의 다스림에 반역을 일으킵니다. 그러한 결과를 사람들이 되받아 고통과 수고 속에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자에게 주어진 심판으로 여자 자신이 고통받고 가정이 어둠과 혼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남자에게 주어진 심판으로 수고를 통해 살아가며 피조세계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원래 그렇게 되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회복될 수 있고 회복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에 사역을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반역에서 창조 때 베푸셨던 복과 보시기에 좋은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아들을 보내 일하시고 이제 마지막 성취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고 고통과 수고에서 해방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복된 형상과 모양으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며 돕는 베필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피고 가꾸며 사랑으로 풍성한 가정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피조 세계도 정복과 파괴를 통해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피고 가꾸어 다시 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회복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한날이 주어졌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을 돌보고 가꾸며 한 몸 되어 사랑이 풍성한 삶을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 이러한 경험으로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피조물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다시금 피조세계를 하나님께 위임받아 가꾸고 돌보며 하나님께서 보기 좋은 세상으로 세워가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된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십자가에서 은혜를, 구원을, 사랑을, 생명을 거두신 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구원을, 사랑을, 생명을 베풀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예수의 섬김으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회복된 삶을 나누고 전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정이 회복된 모습을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2.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과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3. 하나님께서 나의 고통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 삶 속에서 고통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이 땅에 고통과 수고가 들어왔으나, 그 속에서도 우리를 회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죄와 사망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 저를 붙잡아 주시고,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게 하시고 피조물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케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