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창세기 11장 1-8절)
오늘 본문은 시날 평지에 성읍과 탑을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본문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10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시날 평지는 니므롯의 영역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고대 왕국으로 강력한 군주의 통치가 실현된 곳에서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 줍니다.
창세기 10장에서는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졌다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11장에 와서 흩어진 상황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흩어진 상황 이야기는 자기 성취, 인간의 욕망 실현이라는 인간의 의지와 이런 시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아주 강렬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허락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복으로 인해 온 땅으로 퍼져 나가는 인간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 벌인 사건이 다시금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첫 사람은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에 넘어간 것이지만, 바벨에서는 우리의 이름을 내자고 하여 하나님께 직접 도전하는 죄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러한 심각한 죄에도 우리는 노아 시대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됩니다. 사람의 죄로 인해 세상이 다시는 물로 멸망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이 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실지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시날 평지에 세워진 성읍과 탑은 당시 고대 근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도시화가 시작되던 시기라 할 수 있고 그렇게 본다면 본문의 성읍은 개인 거주 지역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당시 성읍은 개인 거주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공공건물 즉, 행정 관정과 곡물 창고 같은 건물들로 구성되었고 이런 건물들은 주로 신전과 관련되었습니다. 성전과 탑이 있는 이 도시는 신전 복합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분에서 기록된 탑은 현대적인 탑이 아니라 초기 성전 복합체에서 등장하는 지구라트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실제 탑이 하늘에 닿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지구라트로 대변되는 신전만이 가능합니다. 지구라트의 계단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물로 그 계단 꼭대기에는 신들의 문이 있고, 이 공간을 통해 신들은 천상의 거처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늘이 열리는 공간이 지구라트 꼭대기여서 이곳을 하늘과 맞닿은 곳이라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시날 평지에 성읍과 탑을 건설하자는 이 계획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지구라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신전 복합체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만든 신이 그 신전으로 내려와 신전을 건축한 사람들에 의해 경배를 받고, 경배를 받은 그 신이 경배한 자신들에게 복을 내리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세상에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고 있지만 이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신이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것을 기대하며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기대하는 복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 생명과 복의 확장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확대를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당대의 니므롯과 같은 영걸이었고 사람 위에 군림한 전제 군주였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세계를 세운 나라입니다. 파라오는 사람의 욕망의 최 정점에 서 있으며, 자신이 사람들을 동원해서 건설한 신전을 통해 신을 대리해 다스린다며 사람들 위에 군림했을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면서 이집트의 신전을 건설하였을 것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를 신의 대리자로 섬기면서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전을 보수하고 건설하는 역할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당대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가진 이집트의 파라오가 다스리는 나라는 복과 생명이 확장되는 나라가 아니라 죄와 사망이 확장되어 힘없이 압제 속에 부르짖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직접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신의 나라를 확대함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고 자신의 권세를 확장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이집트의 모든 사람들을 동원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의 끝이 없음은 세계 역사나 개인의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을 태양신의 아들로 자처하며 자신의 욕망을 태양신의 뜻이라며 설파했을 것이고 그 뜻은 이집트을 통해 관철되었을 것입니다. 바벨탑을 세운 사람들도 신의 뜻을 구하고, 신들이 계시한 정의나 공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뜻을 실현할 도구로 신전을 활용했을 것입니다. 이 욕망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부터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욕망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세계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죄와 사망의 다스림 속에서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복과 생명이 넘쳐나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계로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두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로 대변되는 하나님 없이 세워진 나라와 하나님이 세워가시는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이집트의 법은 파라오입니다. 파라오를 위해 이집트 온 나라가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완전히 역전된 이 놀라운 경험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는 바벨탑, 이집트의 신전 같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세우는데 삶을 허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신전을 자신들의 내면에 세우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의 뜻을 섬기고 그 뜻을 받들기 위해 섬기지 않습니다. 우상은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힘이 없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신의 힘을 빌어 실현하고 싶은 욕망을 우상에게 투영합니다. 그리고 욕망이 실현된 곳에서는 자신이 군림하며 사람들을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하며 그들을 착취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피라미드 구조의 최 상층을 꿈꾸며 그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합니다. 그 실현을 위해 자신의 힘이 부족하기에 자신이 가진 것을 거래하여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우상을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상은 헛된 것이고 하나님 외에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신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만든 욕망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욕망이 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죄의 욕망으로부터 자유한 것은 우리의 노력과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의 욕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마저도 시험에 들게하고 죄에 빠지게 합니다.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지만, 가인은 죄에게 집어삼켜져서 동생을 살해합니다. 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다스리십니다.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내 자아가 실현되는 세상이, 아름답고 선한 세상이 아닙니다. 사단은 내 이름을 세상에 내는 것이, 내가 다스리는 세상이 아름답고 선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세워지는 모든 나라는 결국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만이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사람들에게 복과 생명을 주십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이름을 내는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죄와 사망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과 생명이 우리를 통해 흘러 넘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마저 이용하여 내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죄의 유혹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권세로 물리치며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며 하나님께서 뜻하신 말씀의 성취를 이루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내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내 이름을 내기 위한 것들이 있을까요?
2.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3. 죄와 사망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세상에서 생명과 복이 넘쳐나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세워갈 수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루를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안에 내 이름을 내고 나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죄의 소원이 나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군림하며 내려다보는 삶의 욕망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는 죄를 다스릴 능력이 없는 무능한 죄인임을 고백하오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말씀이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든 것들이 복과 생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