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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41 한탄

  • 관리자
  • 3시간전

본문: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6장 1-7절)

 

오늘 살펴볼 본문의 내용은 논쟁점이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들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본문을 처음 대하는 독자들인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장소적 거리를 가지고 있는 오늘의 대부분의 독자들은 본문의 내용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해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은 학자들의 연구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 해석의 일치를 보게 되었지만 본문은 해석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묵상을 해 나가면서 논쟁을 설명하지 않고 개혁주의 전통 내에서 문맥을 고려하여 진행해 나가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사람의 반역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고 한탄하시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선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세상에서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상황을 '사람의 죄악에 세상에 가득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반역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죄악으로 넘쳐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가 보기 좋은 것을 선하다고 결정하고 취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이 원문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문맥을 고려해서 해석하면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리라' 혹은 '나의 영이 사람들을 쳐서 심판하는 일을 영원히 하지는 않으리라'의 의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한 은혜를 거두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선지서의 기록된 하나님이 사람과 쟁변하시는 것은 심판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유예하고 돌이키라는 권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논쟁하거나 다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이 유예되고 있었고 사람들이 심판을 유예하시는 은혜 아래 살면서 비록 불완전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복들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 은혜를 거두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된 상황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상황입니다.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은 원래 육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이해하자면 중국어 성경으로 번역한 '혈기'를 참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번역을 통해 의미를 이해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폭력성을 가진 존재, 가인의 후손으로 폭력성과 잔인성을 대표하는 라멕과 같은 사람들이 표준이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아닙니다.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람을 향해서도 땅과 다른 피조물들을 향해서도 폭력성과 잔인성을 드러내며 다투고 분쟁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 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부분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개혁주의의 전통과 문맥을 따라 살펴보면 120년의 심판 유예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심판의 선언 후부터 홍수 때까지의 시간임과 동시에 인류가 하나님께 반역을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으로 주어진 유일한 소망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기록을 마주합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네피림은 보통 거인족으로 알려져있는데, 현시대에서는 상상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만화나 영화에서와 같은 거대한 거인이라기 보다는 체격이 장대한 장부라는 의미가 더 타당해 보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13:33에서 열두 정탐꾼의 보고에 등장하는 것을 통해서 네피림의 존재는 오랫 동안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장부이고 용사이고 그 사람들이 명성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4장과 5장에서 기록된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에게서는 문화와 문명의 시조들이 나오고, 후대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셋의 계보에서는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과 하와와 같이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해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으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 형편없는 결과가 나타나야 되는데, 성경은 오히려 그 결과가 용사가 되고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평가가 하나님의 평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평가는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가인의 후손들, 그리고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시대 사람들에게 용사요, 명성을 얻은 자라는 서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용사나 명성은 하나님의 복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서술한 내용들이 쌓여 심판을 받습니다. 즉 이 서술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용사와 명성이 있는 자들이 존재하는데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차 있습니다. 즉, 그들은 죄를 세상에 더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다고 성경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수 전의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이집트의 삶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집트에는 수 많은 용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용맹하고 명성을 떨친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애롭고 인자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 위에 군림하고 억압과 착취에 압장 선 사람들임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평판과 그로 인한 세상의 모습이 선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용맹함과 명성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그런 자들로 인해 죄와 사망이 더 공고해지고 왕성하게 활동함을 목도 했을 것입니다. 그 상황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않습니다. 노아 홍수 전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심판을 선언하시던 그 상황과 동일합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한탄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경건한 가족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심판하시고 경건한 후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경건한 후손들이 이집트를 전복하고 그 위치를 차지하라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회복하고 생명과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 것이지, 죄와 사망의 다스리는 세상에서 제일 상위에 자리 잡고 권세를 누리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통해 배우고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패합니다. 이스라엘은 열방에 본이 되고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샘플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열방을 부러워하고 열방을 닮아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를 세상의 성공자로,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자로 만들기 위해 구원하신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평가와 세상의 명성에는 관심이 없으심을 보여줍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열망과 소원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다스림을 공고히 하는 일에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하고, 말씀을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내 이름을 내고 내가 명성을 얻음으로 죄와 사망의 다스림이 더 확고해지고 확산되고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하며 생명과 복이 우리 삶에 넘쳐나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회복되고 질서가 세워지며 삶이 풍성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복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근심하시며 한탄하는 날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내 영역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조차도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되는 복된 한 날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하나님께서 내 삶을 보시고 근심하시고 한탄하실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 내 삶이 하나님의 근심과 한탄을 자아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해야 할까요?

 

3. 하나님께서 죄악을 심판하시면서도 여전히 구원의 길을 예비하심을 믿고 있나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죄가 있다면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내가 살아가면서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죄로 가득 차 있지만, 저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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