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113 십일조: 주권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응답(창세기 14:20 중심으로)

  • 관리자
  • 2026.10.03 15:41

본문: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창세기 14:13-24절) 

 

아브람은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은 후, 자신이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기꺼이 드립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십일조 사건입니다. 이 행위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무감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치른 전쟁의 승리가 자신의 칼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는 가장 실질적이고 정직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십분의 일’(מַעֲשֵׂר, 마아세르)은 단순히 수치적인 10%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상징하는 대표적 헌신을 뜻합니다. 아브람은 전리품을 세며 자신의 몫을 계산하기보다, 그 소유의 근원적인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선포했습니다. 물질을 드리는 행위는 우리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신앙의 나침반입니다.

 

역사문화적으로 전쟁 전리품은 승리자의 당연한 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 보상의 일부를 구별하여 제사장에게 드림으로써, 자신이 세상의 힘의 논리를 따르는 ‘용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언약의 백성’임을 세상 앞에 공포했습니다. 십일조는 내 주머니의 일부를 떼어내는 아까운 손실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확인하는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는 ‘소유’가 아니라 ‘주권’에 있습니다. 아브람이 드린 십일조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진짜 공급자이십니다”라는 믿음의 마침표였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주님께 구별하여 드릴 때, 우리는 비로소 물질의 노예에서 물질을 다스리는 청지기로 격상됩니다. 드림은 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풍요를 담기 위해 우리 손의 집착을 씻어내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세상의 서사는 “많이 쌓을수록 안전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인색함의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드림으로써 주권을 인정하라”고 말하며 우리를 자유의 광장으로 끌어냅니다. 아브람의 십일조는 소돔 왕의 유혹적인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영적 자존감’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린 자는 세상이 던져주는 미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닮아가야 할 그리스도의 형상은 자신을 ‘십분의 일’이 아니라 ‘전부’로 내어주신 예수님의 희생에서 완성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화목제물로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아브람이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산 제물로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의 통치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드림은 주님의 거대한 희생에 대한 감격스러운 응답이어야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 주제는 레위기의 제사 제도와 말라기의 약속을 거쳐, 신약의 ‘즐겨 내는 자’의 원리로 확장됩니다. 십일조는 율법의 굴레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유지하는 생명의 탯줄과 같습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예물은, 장차 만왕의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께 온 열방이 예물을 드리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의 소득 중에서 하나님의 몫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그것은 단지 금전적인 십일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에너지 중 ‘첫 열매’를 누구에게 드리고 있습니까? 가장 좋은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새벽 기도,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봉사 등이 모두 아브람이 드렸던 십일조의 현대적 표현들입니다.

 

오늘 우리 손에 들려진 ‘전리품’은 무엇입니까? 어제 거둔 업무의 성과인가요, 아니면 오늘 주어진 새로운 기회인가요? 그 모든 것의 10분의 1을 구별하여 주님께 드리기로 결단하십시다. 물질과 시간을 떼어 드리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매일 아침 몸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지갑과 스케줄표를 주님 앞에 펼쳐놓읍시다. “주님,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이 일부를 구별하여 드립니다.” 이 고백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돈과 시간에 쫓기는 노예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자원을 다스리는 언약의 상속자로 당당히 걷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감사의 하루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1. 아브람은 왜 전쟁 승리 직후에 자신의 수고를 보상받으려 하지 않고 예물을 먼저 드렸을까요?

2. 나는 나의 소유물 중에서 ‘이것은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구별해 둔 영역이 있습니까?

 

[적용 질문]

1. 오늘 내가 가진 시간이나 물질 중,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해 특별히 구별하여 드려야 할 ‘첫 열매’는 무엇인가요?

2. 인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모든 승리는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아브람의 고백을 어떻게 실제적인 드림으로 연결하시겠습니까?

 

[묵상기도]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 제 손에 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마치 제 힘으로 얻은 것처럼 교만해지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가장 먼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구별하여 드리는 정직한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색함을 버리고 즐거이 드림으로 주님의 무한한 풍요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고, 오늘 하루도 청지기적 사명을 다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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