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세기 5장 28-32절)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가인의 족보에 같은 이름을 가진 에녹과 라멕을 동시에 살펴보면서 족보가 창세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에 등장하는 같은 이름은 에녹과 라멕입니다. 먼저 에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인의 족보에서 에녹은 가인이 낳은 아들입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놋 땅에 거하며 자신을 위한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자신이 아닌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 성이라고 명명합니다. 가인의 아들 에녹은 아버지로부터 성을 물려받습니다. 성을 물려받으면서 성이 가지는 의미도 함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안전을 성에 의지하는 삶, 이것이 가인과 에녹의 삶입니다. 에녹은 성 안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모든 욕망을 성에 투여하며 성을 발전시켜나갔을 것입니다. 에녹은 반드시 죽을 운명이었음을 알면서도 내일을 준비하지 않고 성을 더욱 공고히 하며 성의 영역이 확대되고 발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삶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셋의 후손이었던 에녹은 가인의 아들 에녹과 같은 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선조에게 물려받은 성이 없습니다. 자신을 보호할 그 어떤 것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 에녹은 선조들로 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물려받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에녹은 세상이 번영하고 발전하여 사람들이 보기 좋은 유토피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여질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만 생명이 있음을 고백하며 의지하는 삶을 통해 가인의 아들 에녹과 달리 셋의 후손인 에녹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데려가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입니까? 세상의 번영과 발전은 죄와 사망을 동시에 확대하고 강화됩니다. 거기에 라멕이라는 동명이인의 삶이 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자신의 안전을 자신의 힘으로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이 그리는 세상은 더 나은 세상, 더 살기 좋은 세상, 보기 좋고 아름다우며 선한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죽음으로 달려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쌓은 성에 갇혀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신음하며 자신들의 마지막을 의식적으로 모른체하며 시기와 질투, 분쟁과 다툼, 살인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설 곳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라멕과 라멕의 아들인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라멕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지으며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땅은 여호와께서 저주하신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태초의 땅은 하나님께 저주받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풍성함을 드러내며 인간이 거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반역으로 인해 죄가 들어오고 그 결과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땅이 저주을 받은 결과를 사람들이 직면하게 됩니다. 라멕은 자신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결과로 받은 땅의 저주를 몸소 겪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하고 슬픈 현실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라멕은 아들의 이름을 '안식'이라는 의미를 가진 노아로 짓습니다. 그런데 라멕은 노아를 통해 '우리'가 안위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 자신은 안식하는데, 안식하는 노아를 통해 세상이 안위를 받습니다. 안위는 ‘위로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노아를 통해 위로받습니다.’ 이 표현은 라멕이 자신의 아들을 통해 사람들이 소망하는 바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멕은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선조들로부터 에덴의 비극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 이유가 하나님을 향한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영향 때문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아버지 라멕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 또한 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소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라멕은 하나님께서 심판 중에 하신 약속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심판 중에도 아주 멸망하지 않을 것을 소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들이 여인의 후손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노아의 이름이 의미하는 안식, 이 안식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시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안식에 참여했지만, 반역으로 인해 안식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던 그 안식을 소망하며 자기가 낳은 아들은 안식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안식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순종이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면, 세상은 안식이라 불리는 노아를 통해 위로를 즉 건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두 족보에 대해 들었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대변하는 가인의 족보와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셋의 족보, 즉 자신들이 경험한 이집트와 파라오로 대표되는 세상과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신들, 이 둘의 대비가 분명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이집트는 당대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자랑했던 나라입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강력한 힘의 나라였습니다. 그 찬란한 문명과 문화의 이면을 직접 경험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사건과 이집트의 파라오를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셔서 자신들을 건져내신 일이었습니다.
광야에 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기신 싸움에 동참하여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기도 없고, 나라를 세울 만한 어떠한 체계도 없습니다. 셋의 후손들에게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부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자신들은 가인의 후손들이 내세운 것 같은 것들이 없지만, 자신들의 보호자 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 안에 주어지는 생명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멸망으로 달려가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손들에게는 심판을 알리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안식에 초대하시고 세상을 위로하십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족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도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하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방법을 사용하며 하나님을 떠나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이제 이들에게도 소망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경건한 자손의 후예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십니다. 이사야 53장 2절의 기록처럼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고운 모양도, 풍채도,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의 후손들처럼 내 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셨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성취를 이루어내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에 버림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 예수가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 속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워가며 세상을 가꾸고 회복케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는 가인의 후손이 아닙니다. 세상의 번영과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우리들의 힘과 노력으로 유토피아를 이루어가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셋의 후손이며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예수님께 있고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나를 통해 세상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날이 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세상을 위로하셨듯이, 오늘 나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고자 하십니까?
2. 세상의 성공과 번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내 삶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 오늘 하루,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삶 속에서 어떻게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번영과 안전을 추구하며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가인의 후손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 셋의 후손들의 삶을 돌아보며 저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겸손히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때때로 세상의 힘과 안정된 환경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성을 쌓고,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성공을 추구하며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번영은 죄와 사망을 확대할 뿐이며, 하나님을 떠난 성취는 결국 헛될 뿐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고, 노아와 같이 참된 안식을 누리며 세상을 위로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소망이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게 하시고, 예수님과 같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내게 주어진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이 흘러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